
1999년 개봉한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Wild Wild West)는 윌 스미스, 케빈 클라인 주연의 SF 서부 액션 코미디로, 당시 할리우드에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여름 블록버스터였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혹평과 흥행 실패. 이 영화는 지금도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과하게 만든 실패작'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됩니다. 그러나 흥행 실패라는 평가 이면에는 수많은 실험과 제작자들의 독특한 선택, 배우들의 도전과 고뇌, 90년대 후반 영화 산업의 흐름을 반영한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가 존재합니다. 2026년 현재, OTT 플랫폼에서 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 이 작품의 제작 과정을 더 깊이 들여다보며, 영화라는 거대한 기획의 뒷모습을 되짚어봅니다.
할리우드 리메이크 열풍 속의 도전: 기획 배경과 시대 흐름
1990년대 말은 할리우드가 리메이크와 프랜차이즈 중심으로 재편되던 시기였습니다. 맨 인 블랙, 아마겟돈, 인디펜던스 데이 등 블록버스터가 전성기를 맞이하며, 스튜디오들은 검증된 원작과 인기 배우 중심의 대형 프로젝트에 집중했습니다.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도 그 흐름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원작은 1960년대 방영된 TV 시리즈로, 당시로서는 참신한 ‘서부+첩보’ 장르였습니다. 이 콘셉트를 확장해 SF와 코미디 요소를 추가하고, 당시 최고 인기 스타였던 윌 스미스를 기용하여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로 재해석하겠다는 것이 워너브라더스의 기획 의도였습니다. 감독은 맨 인 블랙으로 흥행을 이끈 배리 소넨펠드. 이 조합만으로도 “믿고 보는” 블록버스터라는 기대감이 형성됐습니다.
그러나 제작 초기부터 방향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원작 팬들은 진지하고 첩보적인 분위기의 원작과 달리, 영화는 기괴한 과학기술과 유머가 뒤섞인 톤으로 접근했고, 특히 ‘거대한 기계 거미’라는 설정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이 설정은 제작자 존 피터스의 고집이 반영된 결과로 알려져 있으며, 그는 이전에 시도했던 슈퍼맨 리부트 프로젝트에도 비슷한 거미 메카닉을 넣으려 한 전력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초대형 블록버스터에 '개인적 취향'이 개입된 제작 결정이 강하게 반영되면서, 작품은 처음부터 중심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것은 시도 자체는 좋았지만, 톤의 일관성이 무너지면서 어떤 관객도 만족시키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윌 스미스의 선택, 다른 배우들의 도전과 캐릭터의 무게
윌 스미스가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은 지금까지도 가장 유명한 ‘캐스팅 비하인드’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와 거의 동시에 매트릭스의 ‘네오’ 역을 제안받았고, 당시 대본이 난해하고 비주얼이 구체화되지 않았던 매트릭스 대신, 확실한 제작진과 스튜디오, 블록버스터 스타일을 갖춘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를 택했습니다.
그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흥행 실패라는 씁쓸한 결과로 이어졌고, 윌 스미스 본인도 훗날 “내 인생 최악의 선택 중 하나”라고 자조하며 회고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당연한 선택으로 여겨질 만큼, 이 프로젝트는 모든 조건이 갖춰져 있던 '꿈의 기획'이었습니다.
공동 주연인 케빈 클라인은 이 영화에서 두 역할을 맡았습니다. 냉철한 과학자이자 발명가인 고든 박사와, 미국 대통령까지 연기하는 멀티 롤을 수행했는데, 원래는 조지 클루니가 물망에 올랐지만, 일정 문제로 하차하면서 케빈 클라인이 대체 투입됐습니다. 그는 독특한 유머 감각과 연기 폭으로 중심을 잡아주려 했지만, 시나리오상의 문제로 캐릭터가 완전히 살아나지는 못했습니다.
케네스 브래너의 러브리스 박사는 논란의 중심이었습니다. 사이보그 하반신, 과장된 말투, 광기 어린 캐릭터는 지나치게 만화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의도된 설정이기도 했습니다. 브래너는 본래 셰익스피어 연극과 고전 영화의 대가로, 이와 같은 기괴하고 극단적인 악역은 그의 커리어에 있어 ‘파격’ 그 자체였습니다.
셀마 헤이엑의 캐릭터 ‘리타’는 비주얼적인 존재감은 컸지만, 내러티브 상으로는 큰 의미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캐스팅은 원래 예정된 배우가 하차하며 급히 결정됐고, 워너브라더스는 글로벌 마케팅 효과를 기대하며 그녀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여성 캐릭터의 활용이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스팀펑크 미장센과 CG 기술, 실패의 원인인가 실험의 결과인가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는 시각적 완성도만 놓고 본다면, 당시 할리우드에서도 손꼽히는 프로덕션 디자인을 자랑합니다. 특히 증기기관 기반의 무기, 기계 장비, 열차 내부 세트, 의상 등은 스팀펑크라는 장르를 메이저 영화로 끌어들인 초기 사례 중 하나였습니다.
거대한 스파이더봇은 당시 기술로 구현하기에는 너무도 어려운 프로젝트였습니다. 대부분은 미니어처와 CG의 결합으로 제작됐고, 이를 위해 수많은 VFX 아티스트와 물리적 세트 제작진이 투입되었습니다. 당시 CG 기술이 매트릭스나 스타워즈: 팬텀 매너스에서 본격적으로 실험되던 시기였음을 감안하면, 이 영화의 기술적 도전은 매우 선구적인 시도였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적 시도가 영화의 완성도를 담보하지는 못했습니다. 과도한 시각효과와 장르 혼합은 오히려 관객의 집중력을 떨어뜨렸고, 이야기 흐름을 해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기술을 위한 기술”, “아이디어는 멋지지만 서사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이어졌으며, 영화는 결국 1억 7천만 달러라는 막대한 예산을 들이고도 흥행 실패라는 결과를 맞이합니다.
당시 비평가들의 반응도 혹독했습니다. 로튼토마토 17%, 메타크리틱 38점이라는 낮은 점수는 이 영화가 시대를 앞서간 실험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균형을 잃은 제작의 결과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지금까지도 인용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대 들어 레트로 콘텐츠의 인기가 급부상하면서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는 OTT, 유튜브, 트위터 등에서 컬트적인 지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스팀펑크 비주얼을 좋아하는 팬들 사이에서는 “지금 만들어졌다면 더 잘됐을 영화”라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으며, 일부 장면은 패러디나 리믹스 영상으로도 꾸준히 회자되고 있습니다.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1999)는 실패작이면서도, 그 시대의 상상력, 제작자들의 고집, 배우들의 도전, 기술의 실험 정신이 모두 집약된 작품입니다. 지금 다시 돌아보면, 단순히 '못 만든 영화'라기보다는,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다 과부하가 난 영화, 또는 시대를 앞서간 기획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영화제작 과정에 숨겨진 이야기, 비하인드, 그리고 실패 속에 담긴 의도와 실험정신이 궁금하다면, 지금 이 영화를 다시 한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