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에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왓 위민 원트(What Women Want)’는 당시 전 세계적으로 큰 흥행을 거두며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영화는 남성 주인공이 여성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얻게 되며 벌어지는 유쾌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그 이면에는 성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과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2026년인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단순한 향수가 아닌 시대 변화에 따른 재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감독의 연출 방식, 주인공들의 심리 변화, 그리고 영화가 전달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다시 살펴보면, 이 작품이 단지 로맨스 영화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감독 낸시 마이어스의 연출력
‘왓 위민 원트’는 할리우드에서 드물게 상업적으로 성공한 여성 감독, 낸시 마이어스의 대표작입니다. 마이어스 감독은 이전에도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이나 ‘인턴’ 등에서 탁월한 감정선 연출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왓 위민 원트’는 그녀가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완전히 입지를 다진 작품입니다. 특히 이 영화에서는 남성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통해 성별 역할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비트는 방식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마이어스는 전통적인 로코의 틀을 따르되, 여성의 관점을 영화 중심에 두는 방식으로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냅니다. 영화 속 배경인 광고회사는 외형적으로 화려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남성 중심의 사고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공간입니다. 이 안에서 여성 임원이 등장하고, 남성 주인공이 여성의 내면을 듣게 되면서 일어나는 갈등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닌, 당시 직장 내 성별 갈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마이어스 감독의 시각은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대립이 아니라 ‘이해’와 ‘공감’이라는 인간관계의 본질에 집중합니다. 닉이 여성들의 생각을 듣게 되면서 겪는 혼란과 변화는 단순한 코미디 장치가 아닌, 기존 사회 구조에서 ‘남성성’이 얼마나 일방적이었는지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합니다. 이 영화는 웃음과 함께 씁쓸한 자기반성의 시간을 제공하는 매우 정교한 연출의 산물입니다.
2026년 현재, 다양성과 포용이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낸시 마이어스의 연출은 더욱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그녀의 영화는 단순히 ‘여성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아닌, 감성적이면서도 구조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으로, 젠더 이슈와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동시에 담아냅니다. 지금 이 시점에 다시 보는 마이어스의 연출력은 시대를 앞서간 감각으로 재해석될 가치가 충분합니다.
주인공 닉과 달시의 캐릭터 변화
닉 마샬(멜 깁슨 분)은 영화의 시작부터 ‘남성성’의 상징처럼 그려집니다. 그는 외모도 좋고 카리스마도 있으며, 여성에게 인기가 많은 인물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이런 겉모습과는 달리 닉은 매우 자기중심적이며, 여성의 감정이나 생각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의 사고방식은 오로지 남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에 국한되어 있죠. 이러한 설정은 2000년대 초반의 사회적 남성상과 상당히 유사하며, 당시 많은 관객들이 닉에게서 자신 혹은 주변인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닉이 여성의 마음을 읽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은 일종의 ‘역지사지 체험’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이 능력을 활용해 자신의 경력을 쌓고, 경쟁자인 달시를 몰아내려 하지만, 점차 여성들의 진심 어린 고민과 슬픔, 외로움을 들으며 마음속에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특히 커피숍 점원, 회사 동료, 심지어 자신의 딸까지, 닉이 접하는 여성들의 내면은 그동안 자신이 전혀 관심 가지지 않았던 인간적인 면모였습니다.
달시(헬렌 헌트 분)는 닉과는 정반대의 인물입니다. 그녀는 강인하고 똑똑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의심과 저항에 직면합니다. 특히 남성 중심적인 조직에서 리더로서 자리 잡는 데에는 그녀가 겪는 감정적 소모와 고민이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닉이 달시의 내면을 듣게 되면서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연애 감정이 아니라, 처음으로 ‘존중’이라는 감정을 배우는 순간입니다.
이 두 인물의 변화는 단순히 개인의 성장을 넘어, 성별 간의 이해라는 더 큰 틀 안에서 읽혀야 합니다. 닉이 능력을 잃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여성의 마음을 읽을 수는 없지만, 진정한 공감과 존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 과정은 2026년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주제입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타인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하며 갈등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닉과 달시의 이야기는 남녀를 넘어 인간 간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듣고 이해하려는 노력’ 임을 말해줍니다.
2026년에 다시 떠오르는 영화의 메시지
‘왓 위민 원트’라는 제목은 단순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실은 매우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가 던지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우리는 과연 타인의 진심을 이해하고 있는가?”입니다. 이 영화는 유쾌한 판타지 설정을 통해 인간관계에서의 본질적인 문제, 즉 ‘공감 부족’이라는 화두를 던집니다.
닉이 얻게 되는 능력은 단순한 초능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적 소수자 또는 무시당해 온 존재들의 ‘내면’을 듣게 되는 계기입니다. 이 영화는 여성의 속마음을 직접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설정을 통해, 그동안 사회가 얼마나 일방적인 시선으로 여성을 규정해 왔는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직장에서 겪는 차별, 연애에서의 감정소모, 가족 내에서의 갈등 등 다양한 이슈들이 닉의 경험을 통해 하나하나 조명됩니다.
2026년 현재는 성 역할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성별에 따라 역할을 나누는 고정관념은 점점 해체되고 있고, 젠더 다양성 또한 사회적 담론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태도는 여전히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 영화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타인의 속마음을 들을 수 없고, 그저 추측하며 오해하기 일쑤입니다. 닉이 능력을 통해 얻은 교훈은 바로 그 ‘이해하려는 자세’이며, 이는 2026년에도 여전히 가장 필요한 태도입니다.
또한 이 영화는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도 함께 강조합니다. 말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 듣는 능력’입니다. 닉은 능력을 잃은 이후에도 달시와 진심으로 소통하며 관계를 회복하고, 딸과의 관계에서도 변화된 모습을 보입니다. 이는 판타지가 끝난 이후에도 남는 현실적인 교훈이며,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가 주는 유쾌함을 넘어서 인생에 대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왓 위민 원트’는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2000년에 개봉했지만, 2026년 현재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특히 감독 낸시 마이어스의 세심한 연출과 입체적인 캐릭터 구성은 지금 다시 봐도 전혀 낡지 않았습니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풀어낸 이 작품은 여전히 유효한 가치와 교훈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넷플릭스나 OTT 플랫폼에서 꼭 한번 감상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 이상의 깊이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